유로247가입 러시아 전쟁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국토 침공 행위는 러시아연방국의 크리미아반섬 병탄으로 고개에 달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연방국의 뒷바라지을 받는 격리주의 세력과 우크라이나 사이 돈바스 갈등이 돌발하였다. 2014년 우크라이나 개혁 즉후 러시아연방국가 대적 행위를 개막하였으며 이는 대갈래 크리미아반섬와 돈바스의 경국적 격 과제에 집중되었는데 돈바스의 과우에는 세계적으로 우크라이나의 국토로 인정받고 있다. 제 나라가 우크라이나에게 다종다양한 레벨의 뒷바라지을 공급하였으며, 벨라루스는 2022년 러시아연방국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그때 벨라루스 국토 내 러시아연방국군의 통행을 공급하였다. 러시아연방국-우크라이나 갈등[18](러시아연방국어: российско-украинская война, 우크라이나어: російсько-українська війна)은 2014년 2월부터 개막된 분쟁으로, 우크라이나와 침격국 러시아연방국 및 우크라이나 내 친러 격리주의 세력 성관 분쟁을 뜻한다.

야누코비치가 러시아연방국로 망명도주한 즉후 동부와 남부 우크라이나에서는 친러 군기가 돌발하였다. 2014년 2월 2일, 그때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었던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구주 결합-우크라이나 공유체 협정 교섭을 거부하고 구아주 검약 결합과 갈수록 긴밀히 연계하기로 걸음불량 가다 유로마이단 시위와 이강 깨다 개혁으로 쫓겨났다. 2021년 끊임없이 우크라이나 국토 근처 러시아연방국군의 보강으로 양국 간 경직이 고조되었으며,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연방국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분쟁이 전면전으로 격화되었다. 그 외에도 분쟁 개막 후 8년 간격 해상 갈등, 사이버전, 다종다양한 경국적 경직 고조 등 제 과제이 발생하였다.

[19]2014년 8월에는 표먹이 없는 러시아연방국 군용 차 행렬이 러시아연방국-우크라이나 강경을 넘어 우크라이나 도네츠크대개 돌입하기 개막했다. 2014년 4월에는 동부 우크라이나의 친러 격리주의 세력이 러시아연방국로부터 경국인, 각별작다대, 내실할 수 없는 군사 고문관 등의 뒷바라지을 받아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에 도네츠크 공민 공국을, 루한스크주에는 루한스크 공민 공국을 세워 격리독자을 공포했다. 3월 16일에는 러시아연방국로 병탄불량는 아이스크림 거민선거를 열고 거민선거가 개통되다지 양일 후에는 아이스크림 공국이 러시아연방국 국토로 병탄되었으나 세계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같은 계제 아무 표먹이 없는 러시아연방국군이 우크라이나의 크리미아반섬로 이동하여 주 전략지구와 인프라스트럭처를 장악하고, 2014년 2월 27일에는 아이스크림의 의회 건조물도 강점하였다.

2019년에는 우크라이나 정가첨 우크라이나 국토의 7%를 러시아연방국가 일시적으로 강점가운데귀라고 발표했다. 돈바스 갈등은 결국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연방국의 뒷바라지을 받는 2개 괴뢰국 사이 고요인 분쟁으로 고착화되었으며 제 계단의 낙착 계획에도 휴전이 끊임없이되지 않고 있다. [19] 2015년 2월 러시아연방국와 우크라이나의 양국간 분쟁을 종식하기 각기 콴툼협정인 민스크 아이리스인 협정이 체약되었지만 제 분쟁으로 인해 협공정 사항이 완전하게 지켜지진 못했다. [20] 러시아연방국는 간여 계획를 감추러 계획했지만 러시아연방국군이 돈바스에서 깨다 갈등에서 제 주요 전쟁에 참여하였고 난동한 때에는 우크라이나 내로 돌입할 수 있는 전략대비대로 끊임없이하였다.

경직이 고조되면서 러시아연방국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북대서양규약구조의 개척을 논평하며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규약구조 입단을 절대 금기할 것을 요구하였다. 북대서양 규약 구조(N자동열차운전장치)는 러시아연방국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대비하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러시아연방국 정부는 이를 내실했다. [22]2021년 초부터 2022년 1월까지 러시아연방국는 벨라루스와 함께 대로모성 군사 운둔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옹위하였다. [21] 2022년 9월 규격으로는 우크라이나 국토의 맥시멈 18%를 러시아연방국가 강점했다.

러시아연방국군이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로, 게다가 벨라루스를 향해 우크라이나 북부를 침공하면서 러시아연방국가 대대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불량 세계계급의 수많은 나라와 동아리가 러시아연방국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세계법을 심각하게 위반했다며 격렬하게 논평하였다. 3일 후인 2월 24일 푸틴 대통령은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각별 군사 공작의 거행에 대하여”를 발표하며 러시아연방국가 우크라이나 뭍를 전면 침공하기 개막했다고 발표하였다. [23] 2022년 2월 21일에는 러시아연방국가 기법적으로 도네츠크 인공과 보로실로브그라드 인공을 나라승낙했으며 공고적으로 우크라이나 내 두 공국이 건설된 고장에 러시아연방국군을 발견하기 개막했다. 게다가 러시아연방국 겨레연합주의을 주창하고 러시아연방국의 사물할 권리를 부당하며 우크라이나는 소 계제 블라디미르 레닌이 건설했다는 틀린 강변을 펼쳤다.

2014년 우크라이나 친러시아연방국 분쟁의 역사적 배경 기록를 참고하십시오. 배경[구합] 이 갈래의 본문은 러시아연방국-우크라이나 관계입니다. [24] 추횡 러시아연방국의 침공을 적극적으로 뒷바라지하던 벨라루스도 세계적인 불매결맹과 검약 제재에 들어가게 되었다. 2014년 이강 제 나라에서 모 구성로든 부세되었던 대러시아연방국 제재는 2022년 2월 이강 갈수록 보강되었다.

[25] 규약 입단과 함께 구소으로부터 인계인수받아 가지고 있었던 핵무기가 거세 및 붕궤되었다. 1994년에는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핵무기를 포기하고 핵확산방예규약(NPT) 입단에 동의하였다. 1991년 소이 붕궤된 이강에도 러시아연방국와 우크라이나는 긴밀한 관계를 끊임없이했다. 탈소 때와 오렌지 개혁[구합] 오렌지 개혁 기록를 참고하십시오.

이에 대해 러시아연방국의 지도층은 북대서양규약구조가 더 이상 동으로 확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서양의 비기법적인 담보을 위반한다고 강변했다. [29] 소이 붕궤된 이강 몇년간 동구권 나라들은 1993년 러시아연방국 증정위기, 1992년 압하지야 갈등, 제1차 체첸 갈등(1994-1996년) 등 고장 내 만전 강박에 갈래적으로 대거리하여 북대서양규약구조에 입단하는 동작을 보였다. [27][28] 1999년 러시아연방국는 구주 만전 규범의 사인국으로 “각 가맹국이 결맹 규약을 포함한 만전협정을 무궁자재롭게 선택하거나 개정할 수 있는 내속한 권리가 있음을 재인정”하였다. [26] 그 댓횡 러시아연방국, 영국, 미국은 부다페스트 만전 담보 약절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국토 보존과 경국적 독자 끊임없이에 합의하였다.

[35] 두 달간 오렌지 개혁으로 나다 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해 선거 날조에 대해 반대하였다. [34] 11월에는 그때 우크라이나의 총리였던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승리자로 공포되었으나 선거 참공인들은 제 투개표 날조 의혹을 강변하였다. 선거 광고 기간 도중 야 후보였던 빅토르 유셴코가 TCDD 다이옥신이 들어간 스테이플사에 마취되어 쓰러지는 과제이 발생했고,[32][33] 다음에 유셴코는 이를 러시아연방국의 사대개 가다 과제이라고 강변했다. [30][기미독립운동]200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는 제 갑론을박이 발생했다.

[37] 러시아연방국의 푸틴 대통령은 2011-2013년 러시아연방국 시위의 자아를 유셴코 대통령의 전 고문이라고 강변하였으며, 이 시위를 러시아연방국에 오렌지 개혁을 일으키러는 계획라고 비난했다. 앤서니 코더스먼에 따르면 러시아연방국군의 군관들은 이러한 경향 개혁을 미국과 구주이 이웃국을 공포정하게 만들고 러시아연방국의 나라만전를 약화시키러는 계획라고 봤다. [36] 오렌지 개혁은 가끔 21시기 초 구소 나라에서 깨다 제 시위와 함께 묶어 경향 개혁으로 부르기구 한다. 우크라이나 대법이 본 대통령 선거를 부당 선거로 규칙, 무용화불량 재선거가 열렸으며 재선거 결말 빅토르 유셴코가 대통령으로, 도덕야 티모셴코가 총리로 집권하였고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궤주하였다.

부시는 두 나라의 북대서양규약구조 입단을 추진했다. 북대서양규약구조 성원국의 감도은 엇갈렸는데 서구주 나라들은 러시아연방국의 반감을 네발 않기 공포전 “성원국 걸음 도모”(MAP) 제출을 반대하였고, 반대로 미국의 대통령 조지 W. [39]2008년 부큐레슈티 회견에서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가 북대서양규약구조 입단을 모색하였다. [38] 이 기간 푸틴을 지지하는 대회는 “반 오렌지 시위”라고 불렀다.

[43]유로마이단, 개혁과 친러 난동사태[구합] 이 갈래의 본문은 유로마이단, 2014년 우크라이나 개혁 및 2014년 우크라이나 친러시아연방국 분쟁입니다. [42] 2022년 1월까지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규약구조에 입단할 가능성은 너무 희박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의 북대서양규약구조 입단을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41] 북대서양규약구조는 결국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에 엄동설한 MAP 공급을 거부하였으나, “두 나라는 북대서양규약구조 성원국이 될 것”에 동의하는 공표을 발표하였다.

[47]유로마이단이라는 명으로 불린 수 삭의 시위 끝에 2014년 2월 21일 야누코비치와 야 지도부는 조기선거 요구에 관한 합의 협정에 사인하였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EU와의 최종 협정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승낙하였고,[46] 러시아연방국는 우크라이나에게 이를 승낙하지 말라고 압력을 가했다. [45] 2013년 11월에는 야누코비치가 구주 결합-우크라이나 공유체 협정에 사인하지 않으며, 갈음 러시아연방국와의 관계를 갈수록 긴밀히 하고 구아주 검약 결합에 입단하겠다고 갑작스럽게 걸음하면서 친 구주결합(EU) 시위가 대로모성로 일어났다. 2009년 야누코비치는 2010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입후보를 공포하였고,[44] 2010년 대선에서 최종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55]2월 27일 총리 아르세니 야체뉴크의 과도정가첨 건설되었고 조기 대통령 선거가 도모되었다. [52] 이 법안은 구용되지 않았지만[53]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연방국어 고용 고장에서 부고요인 감도이 나왔으며[54] 러시아연방국계 언론에서는 러시아연방국 겨레이 당두한 강박에 처해 있다고 말하면서 격양되었다. [48][49][50][51] 2월 23일에는 우크라이나 의회가 러시아연방국어를 공무어로 결정한 2012년 말법을 폐기불량는 법안이 발안되었다. 다음 날에는 야누코비치가 수도 키이우를 떠났으며 즉후 논핵 선거를 통해 대통령으로의 권한이 몰수되었다.

분쟁 전기 러시아연방국는 블랙시 함대 산하 약 12,000명목 병력이[55] 세바스토폴, 카차, 흐바르데이스코에, 과우치 등 크리미아반섬 각지에 배치되어 있었다. [49][56]크리미아반섬 내 러시아연방국군 슬기[구합] 이 갈래의 본문은 크리미아반섬의 경국적 격입니다.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연방국어 고용자 인구가 많은 동부 우크라이나 고장의 관장 리더들은 야누코비치를 따른다고 말하면서 2014년 우크라이나 친러시아연방국 분쟁이 돌발하였다. 다음날에는 야누코비치가 러시아연방국에서 다시 겉모양을 드러내고 러시아연방국가 크리미아반섬에서 노골적인 군사 공작을 거행하고 있을 때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여진히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라고 공포하였다.

[59] 분쟁 전기 협정에 따른 병력 규칙으로 러시아연방국는 만전걱정를 제일하여 크리미아반섬에서 공작 거행을 각기 각별작다대 및 기타 난동 부대를 배공치사기 공포전 운둔 군사를 보강하였다. 협정에 따라 크리미아반섬에 운둔 중인 러시아연방국군은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존중하고 우크라이나법을 존중하며 나라 내정에 간여하지 않고 강경을 넘을 때 “군신분증명서”을 보여주도록 요구한 채로 크리미아반섬 내 맥시멈 25,000명까지 러시아연방국군 운둔을 허용하였다. [57][58] 러시아연방국군의 운둔은 우크라이나와 슬기 운둔 및 반송 협정으로 허용되어 있었다. 2005년에는 얄타 근처 과우치곶 등대와 기타 해상 신사정에 엄동설한 통제권을 놓고 분쟁이 있었다.

가기 중인 러시아연방국-우크라이나 갈등은 기법적으로 광고가 발효되지 않았다. [60]군사 공작 공포[구합] 각별 군사 공작의 거행에 대하여 기록를 참고하십시오. 2009년 러시아연방국-우크라이나 가스 분쟁을 낙착하기 공포전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2010년 4월 21일 하르키우 합의를 체약하면서 규약 갱신권과 함께 크리미아반섬의 운둔군 고한을 2042년까지 갱신했다. [55]1997년 체약된 소 블랙시 함개요 분할에 관한 원 규약에 따르면 러시아연방국는 2017년까지만 아이스크림 반섬에 군사 슬기 운둔이 허용되었고 이강에는 아이스크림 자결 공국과 세바스토폴에서 블랙시 함대를 포함한 전 운둔 중인 러시아연방국군이 권귀해야 했다.

역사[구합]2014년 러시아연방국의 크리미아반섬 병탄2014년 2월 20일에는 러시아연방국가 크리미아반섬를 병탄하기 개막했다. [63][64] 우크라이나 의회는 우크라이나를 향해 군사 걸음을 개업한 러시아연방국를 “테러리즘나라”라고 언급하였지만[65] 우크라이나 과시 러시아연방국를 향해 기법적으로 광고강구 않았다. [61] 하지만 본 공포은 우크라이나 정가첨 광고로 이해하였고[62] 세계 제 언론들도 이를 따라 사실논의 광고로 보도하였다. 2022년 러시아연방국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개막될 때 크렘린궁전군은 침공을 발표하면서 공식 광고를 쓰지 않고 “각별 군사 공작”을 개업했다고 말했다.

새로 생긴 보안 건문소가 크리미아반섬와 우크라이나 뭍와의 길를 차단하였고 크리미아반섬 내복 이동도 각지의 검문소로 규칙되었다. [70] 이들은 전략적으로 주요한 곳을 장악하고 아이스크림 의회 건조물을 강점했으며 의회 건조물에 러시아연방국의 국기를 게양했다. [68] 2월 27일에는 표먹이 없는 러시아연방국군이 크리미아반섬 내를 공격하기 개막했다. [66][67][68][69] 2월 22일과 23일에는 러시아연방국군과 각별작다대인 스페츠나츠가 노보로시스크를 통해 크리미아반섬로 돌입하기 개막했다.

[76]3월 1일 러시아연방국 두마가 공식으로 군사력 고용을 승낙하여 크리미아반섬 내로 러시아연방국군과 군사 장비가 기법적으로 들어가기 개막했다. 게다가 사이버 공격을 통해 러시아연방국군이 우크라이나의 정부 관료, 의회 의원의 휴대전화에 접근하여 기별을 방해했다. [75] 게다가 러시아연방국가 사이버 공격을 결행해 우크라이나 정부, 주 언론, 소셜 공중매체 견련 웹사이트를 다운시켰다. [71][72][73][74]다음날 러시아연방국군이 크리미아반섬의 주 비행장과 기별시설을 강점했다.

4월 15일에는 우크라이나 의회가 크리미아반섬를 일시적으로 강점된 고장이라고 공고하였다. 결국 3월 24일 우크라이나 정가첨 반섬 철군을 명했고 30일 전 우크라이나군이 크리미아반섬에서 권귀했다. [77][78] 3월 18일 러시아연방국가 크리미아반섬를 기법적으로 병탄한 후 우크라이나의 군사슬기와 함선을 러시아연방국군이 다 급습했다. [75] 이 다음날에는 남부 수군슬기를 포함한 남자있던 우크라이나의 군사 슬기와 기타 시설이 다 옹위당했다.

[82]2014-2015년 돈바스 갈등[구합] 이 갈래의 본문은 돈바스 갈등입니다. [79] 병탄 이강 러시아연방국는 크리미아반섬의 군력을 보강하고 핵무기 강박을 가했다. [80] 푸틴 대통령은 크리미아반섬에 러시아연방국군 임무부대가 건설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81] 11월에는 북대서양규약구조는 러시아연방국가 크리미아반섬에 핵무기를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돈바스 갈등의 단결기 (2014년) 기록를 참고하십시오. 친러시아연방국 분쟁[구합] 이 갈래의 본문은 2014년 우크라이나 친러시아연방국 분쟁입니다.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에서 깨다 전기 시위는 대개 우크라이나 신정부에 엄동설한 감정을 표방출는 구성로 나타났다.

[83] 이 계단에서는 러시아연방국가 시위를 지지한다고 선언하는 격로 규칙된 간여만을 가했다. [83][84] 하지만 러시아연방국는 이 시위를 이용해 우크라이나를 기울다 경국, 군사적 결합 전역을 개막했다. [83][85] 푸틴은 돈바스 고장이 ‘노보로시야’의 국부라고 말하며 격리주의자에게 정통성을 교부했으며 노보로시야 고장이 어떻게 우크라이나 국토가 되었는지에 대해 경황망조감을 표출했다. [86]3월 말부터 러시아연방국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강경에 병력을 끊임없이 집결해 4월까지 약 3-4만명이 모였다.

[87][55] 이 병력 배치는 우크라이나의 대거리을 방해하고 확전을 강박하는 데 고용했다. [55] 이 강박으로 우크라이나군은 병력을 분쟁 고장 갈음 러시아연방국와의 강경으로 이동해야 했다. [55]우크라이나 정부는 3월 초부터 친러 시위를 반정하고 당지 격리주의 경기가를 체포했다. 격리주의 리더들은 러시아연방국 정보국과 관계가 있었고 러시아연방국 쪽 경영에 각광이 있는 사람들로 바뀌었다.

[88] 2014년 4월부터는 러시아연방국 공민이 격리주의 경기을 완전히 통제했고 체첸인과 카자크 병력을 포함한 러시아연방국 내 물재군과 러시아연방국의 물재 뒷바라지을 받았다. [89][90][91][92] 도네츠크 인공의 사령공인 이고리 기르킨에 따르면 4월에 이런 뒷바라지이 없었다각 하르키우나 오데사처럼 곧 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93] 5월 11일에는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2개 주의 격에 엄동설한 거민선거가 열렸다. [94][95][96]군비 분쟁4월 들어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러시아연방국가 뒷바라지하는 격리주의 세력과 우크라이나 정부 간에 군비 갈등이 개막되었다.

격리주의자들은 각각 도네츠크 인공과 보로실로브그라드 인공의 건설을 공고했다. 4월 6국부터 제 대거처의 행정청사를 강점하고 러시아연방국로 가는 강경 들머리, 거래 본고장, 방송국 및 기타 전략적인 기반시설을 장악했다. 우크라이나군은 4월 15국부터 대테러리즘리스트 공작(자동열차운전장치)을 공고하였으나 대비가 부족했고 부대 배치도 좋지 않아 공작이 빠르게 분리되었다. [97]4월 말 들어서는 우크라이나가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의 통제를 잃었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러시아연방국의 침공 가능성에 대비해 “만전하다 전쟁경계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징모제를 다시 부흥한다고 밝혔다. [98] 5월까지 우크라이나군은 자동열차운전장치 지구 근처의 요충지를 담보해 격리주의자의 확대를 금지하고 우크라이나군의 대대적인 구사이 완결되면 걸음적인 공세로 교체하기 공포전 군사를 재배공치사는 기법으로 전역을 거행했다. 5월 들어 격리주의 세력과 우크라이나 정부 사이 분쟁이 격화되자 러시아연방국는 가식정보전과 민병대 전쟁원, 정규 러시아연방국군, 재래식 군사 뒷바라지 등을 통합한 하이브리드 갈등 기법을 구용했다. [99][100][101] 201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고 나서는 1차 도네츠크 세계비행장 전쟁가 돌발했다.

도네츠크 세계비행장에서 깨다 이 전쟁는 분쟁의 교체점으로 수많은 러시아연방국인 “물재군”이 간여한 도중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격리주의 세력이 대로모성로 전쟁한 처녀의 전쟁였다. [102][103]:15 우크라이나 측에 따르면 2014년 여름 분쟁이 으뜸조에 달했을 때 러시아연방국인 물재군이 남김없이 전쟁원의 15%에서 맥시멈 80%까지 차지한다고 강변했다. [91] 6월부터는 러시아연방국가 무기, 장갑차, 군수푸을 조금씩 보내고 있었다. 7월 말 우크라이나군은 도네츠크를 옹위하고 러시아연방국-우크라이나 강경의 통제권을 담보하며 도네츠크 인공과 보로실로브그라드 인공간 길를 차단하기 공포전 러시아연방국-우크라이나 강경을 향해 대로모성 공세를 펼치기 개막했다.

7월 28일에는 우크라이나군이 사부르모힐라의 주요한 전략적 고지구와 주요 레일 본고장인 데발체베를 수복했다. [104] 우크라이나의 대로모성 공작 성공으로 도네츠크 인공과 보로실로브그라드 인공은 생존이 심각하게 강박받았고 러시아연방국군은 7월 중완부터 우크라이나군을 향해 포격을 가하기 개막했다. 2014년 8월 러시아연방국의 침공’노보로시야’의 기치 밑 결속하다 격리주의 세력이 잇단 군사적 궤주와 낙망을 겪자[105][106] 러시아연방국는 2014년 8월 강경을 넘어 이른바 “보도주의적 호송대”를 발견했다. 우크라이나는 이 동작을 “몸소적인 침공”이라고 불렀다.

[107] 우크라이나 나라만전담보 및 국방위원회는 11월에는 거의 나날이 호송대가 도착한다고 고변(11월 30일 맥시멈 9계단 호송대)했고 호송개요 화물은 대개 무기와 약이라고 말했다. 이고르 기르킨은 8월 초 러시아연방국군에서 ‘귀휴’를 낸 러시아연방국 군바리들이 돈바스에 도착하기 개막했다고 강변했다. [108]2014년 8월 우크라이나군의 대테러리즘 공작으로 친러 세력 통제 하의 국토가 급격하게 감축되었으며 러시아연방국와의 강경에 접근했다. [109] 이고르 기르킨은 러시아연방국의 군사 간여을 촉구했고 격리주의 세력의 민병대는 전쟁 객관이 부족하고 고장 거민들 사이에서 모군이 어려웠기 땜에 밀렸다고 설명했다.

기르킨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몸소 노보로시야라고 명건네다 국토에서 벌어진 갈등에서 궤주하는 것은 크렘린궁전의 공권력과 대통령 일개인의 공권력을 강박받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110]상황이 악화되자 러시아연방국는 하이브리드 갈등을 포기하고 2014년 8월 25국부터 재래식 침공을 개막했다. [109][111] 다음날 러시아연방국 국방부는 군바리들이 ‘우연히’ 강경을 넘었다고 말했다.

[112][113][114] 니콜라이 미트로힌의 추정에 따르면 2014년 8월 일로바이스크 전쟁 그때 돈바스의 격리주의 세력에 2만명에서 25,000명목 병력이 있었는데 40-45%만이 ‘돈바스 고장민’이었다고 말했다. [115]2014년 8월 24일에는 250대가 건너다 장갑차와 가짓불의 뒷바라지을 받은[116] 러시아연방국 공수특전대에게 암브로시이우카 고을이 강점당했다. [117] 같은 날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인 페트로 군로셴코는 현 공작을 외부의 침격에 대거리하는 우크라이나의 “2014년 애국갈등”이라고 말했다. [118][119] 8월 25일에는 러시아연방국의 군용 차 행렬이 우크라이나를 향해 아조프해 바닷가의 노보아조우스크로 넘어왔다는 고변가 들어왔다.

이 행렬은 수 주간격 친러 세력의 거동이 노상 나타나지 않았던. [120] 두우폴을 향해 공격했다. [121][122][123][124][125] 결국 러시아연방국군은 노보아조우스크를 강점했으며[126] 고을에 거소 거소가 등록되지 않았던 전 우크라이나인을 추방하기 개막했다. [127] 이와 동기에 두우폴에서는 친러 세력의 도치 시위가 열렸다.

[127][128] 결국 유엔 만전 담보 이계급가 긴박 회의를 소모했다. [129]프스코프에 운둔하던 제76근위공수끄트머리이 지난 8월 우크라이나 국토 내로 돌입해 루한스크 근린에서 전쟁을 벌여 80광명이 가다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루한스크 근린에서 공수끄트머리 끊임없이 장갑차 2대를 탈취했으며, 딴 고장에서는 공거 3대와 장갑차 2대를 파괴했다고 고변했다. [130][1기미독립운동] 러시아연방국 정부는 전쟁 사실을 내실했지만[1기미독립운동] 8월 18일 러시아연방국의 국방장관 세르게이 쇼이구는 제76근위공수끄트머리에게 “군사 임무를 성공적으로 거행했으며” “용기있고 거성스러운 걸음”으로 러시아연방국의 으뜸 계급 훈장 중 단독인 반보 훈장을 교부했다.

[1기미독립운동]연방국평의회(러시아연방국 상원) 회두인 발렌티나 마트비옌코와 러시아연방국 공영 텔레비전은 러시아연방국군이 우크라이나 내로 들어왔다는 걸 인정했지만 어디여까지나 ‘물재군’일 뿐이라고 말했다. [132] 하지만 러시아연방국의 반체제 계통 신문사인 《노바야 가제목타》는 러시아연방국군의 지도가첨 2014년 여름부터 군바리들에게 전역하고서 우크라이나 내에서 전쟁하라고 돈을 지불했으며 우크라이나 내로 군바리을 보내라고 명을 내렸다고 밝혔다. [133] 러시아연방국의 야 의원인 리플렉터 실로스트베르크도 이와 같다 공표을 발표했지만 실로스트베르크는 자국에서 발견된 전쟁원이 도네츠크 인공과 보로실로브그라드 인공 병력으로 가장한 “정규 러시아연방국군”이라고 말했다. [134]2014년 9월 초 러시아연방국 공영 텔레비전은 우크라이나에서 가다 러시아연방국군의 영결식에 대해 보도했지만 그들은 “러시아연방국 공간”를 공포전 싸울리다 ‘물재군’이었다고 말했다.

통합 러시아연방국당의 중진 경국인인 발렌티나 마트비옌코도 ‘곤제국’을 공포전 싸울리다 ‘물재군’을 상찬하는 발어을 했다. [132] 러시아연방국 공영 텔레비전은 이 때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에서 등사한 군바리 영결식에 대해 보도하였다. [135]두우폴 공세와 1차 민스크 휴전9월 3일 군로셴코는 푸틴과 “영구적인 휴전” 합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136] 러시아연방국는 이 기별을 내실하며 자신은 분쟁의 본사국이 아니며, “분쟁을 어떻게 낙착할 지에 대해 논의했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137][138] 군로셴코가 이강 자신의 강변을 철거하였다. [139][140] 9월 5일 러시아연방국 상임 OSCE 간판인 안드레이 켈린은 친러시아연방국 격리주의 세력이 두우폴을 “독립할 일”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연방국 기관이 두우폴 근린 고장에서 발견되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드레이 켈린은 “그 쪽에 물재군이 있을 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141] 2014년 9월 4일 북대서양규약구조군 군관는 우크라이나 내에 수천 명목 러시아연방국 정규군이 공작 가운데귀라고 밝혔다. [142]2014년 9월 5일 체약된 정전 협정인 민스크 협정에서 우크라이나와 도네츠크주, 루한스크주 내 격리주의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고장이 분리되었다. [143][144][145]민스크 아이리스인 협정과 2014년 말까지[구합] 2014년 러시아연방국의 우크라이나 강경 고장 포격 기록를 참고하십시오. 11월 7일과 12일에 북대서양규약구조 관료들은 러시아연방국에서 총 32개요 공거, 16자문 곡사포, 30개요 화물자동차 부대가 우크라이나 내로 돌입했다고 말하며 러시아연방국군의 사물를 인정했다.

[146] 미국의 대수장군바리 필립 M. 브리들무득점는 “러시아연방국의 공거, 포, 방공 계통, 러시아연방국군 전쟁병이 목견되었다”라고 말했다. [82][147] 북대서양규약구조는 우크라이나 내에서 러시아연방국군의 공거, 포, 기타 중기가 증가했다고 말하며 모스크바에는 철군을 꾸준히 요구하였다. [148] 시카고 공간 과제 의논회는 2014년 중반 끄트머리 군사 장비가 대거 유입된 후 친러 격리주의 세력이 우크라이나군을 경쟁 기능적 이점을 세상고 있다고 검토했다.

효과적인 대공 무기인 부크 유도미사일(MANPADS)이 우크라이나 공군력을 제압했고, 러시아연방국제 드론이 정보를 공급했으며 러시아연방국의 보안 기별 계통가 우크라이나의 기별정보검토을 방해했다. 러시아연방국 측은 우크라이나의 열가냘프다 전자전쟁 계통를 이용했다. 러시아연방국 격리주의 세력의 기능적 이점은 분쟁 강학 센터포워드에서도 같다 검토을 내놓았다. [149] 11월 12일 유에 만전 담보 이계급 회의에서 영국 간판는 러시아연방국가 의도적으로 구주 만전 공조 구조(OSCE)의 관상 임무를 겨우 2 km 광의 강경만 접근할 수 있게 한다거나 관상 임무를 공포전 띄운 드론의 거동을 방해하거나 격추하는 등 방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150]2015년 1월에는 도네츠크, 루한스크, 두우폴 3개 주 전선이 있었다. [152] 군로셴코는 1월 21일 2공포이 건너다 추가 러시아연방국군 보강, 200대가 건너다 공거와 군비 병력 호송대가 강경을 넘어온다는 고변를 발표하며 굉장히 공포전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군로셴코는 자신의 걱정로 공간 검약 포럼디스커션 고비 계획표을 단축했다. [153]2015년 2월 15일에는 민스크 아이리스인 협정으로 불리는 분쟁 종식을 각기 새로운 협정이 체약되었다.

[154] 2월 18일 우크라이나군은 2022년 전까지 돈바스에서 결국으로 제일 격렬한 전쟁가 일어나던 데발체베 전역에서 권귀했다. 2015년 9월 유엔 인권 고등판무관 사무소(OHCHR)는 돈바스 분쟁으로 총 8공포 이논의 역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155]2015-2022년 결빙분쟁화[구합] 돈바스 갈등의 단결기 (2015년), 돈바스 갈등의 단결기 (2016년) 및 돈바스 갈등의 단결기 (2017년) 기록를 참고하십시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갈등은 국토 기복가 거의 없는 교착 공기에 빠졌다.

이 계제 분쟁은 포병끼리의 전쟁, 각별작다대 공작, 참호전이라는 개성을 지녔다. 다만 이 계제에도 전쟁 자체가 아에 멈추진 않았고 반복해서 휴전 교섭이 이루어졌으나 안 저도둑 전쟁과 분쟁이 끊임없이되었다. 데발체베 전쟁가 끝나고 나서 수삭 간 통제선을 따라 소도모성 전쟁이 끊임없이 이루어졌지만 국토 기복는 깨다 않았다. 양 측은 참호, 엄폐호, 터널 들이 이루어진 까다롭다 참호 계통를 설계해 분쟁을 고요인 참호전으로 교체시켜 운둔 고장의 방비력을 보강했다.

[156][157] 이 그때의 교착 공기로 러시아연방국-우크라이나 갈등은 한간격 “결빙분쟁”이라는 레터르가 붙어졌다. [158] 그럼에도 돈바스 고장은 갈등지구로 남자 과월 수십 명목 군바리과 민간인이 불휘했다. [159]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총 29계단의 휴전 교섭이 체약되었으며 각각의 교섭의 유용기간은 무고한이 될 계획이었지만 휴전 교섭은 다 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지 못했다. [160][161][162]미국과 기타 세계 정부 본사자들은 데발체베 고장을 포함해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활발하게 거동하고 있다고 고변했다.

[163] 2015년 규격 친러 격리주의 세력의 병력은 36,000명 격인데(동계제 우크라이나군 병력은 34,000명) 이 중 8,500명에서 1만명이 러시아연방국군으로 추정되었다. 추횡 우크라이나 동부에 러시아연방국 정보총국(GRU) 끊임없이 병력 1,000명이 거동중인 것으로 추산되었다. [164] 2015년 또 딴 병력 추산 통이계지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측은 친러 세력보다 2만명에서 4만명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165] 2017년 규격 평균적으로 3일에 1명 꼴로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불휘했으며[166][167] 러시아연방국군은 6공포, 격리주의 세력 군사는 4만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168][169]러시아연방국 내 언론에서도 러시아연방국군의 불휘, 상이 경우가 보도되었다. [170] 전역자 대회이나 준군사건립을 통해 돈바스로 향하는 병력 공모도 공고적으로 이뤄졌다. 이러한 건립의 지도부 중 한 명인 블라디미르 예원는 우랄 고장에서 모군 거동이 어떻게 가기되는지 공고했다. 이 동아리는 대개 건빵 퇴역군바리 위대개, 그 외에도 군사 객관이 있는 경관이나 소방공무원을 가운데으로 모군 거동을 가기했다.

물재병 한 명을 모군, 전선으로 배공치사는데 난동되는 경비은 약 35만 루블(약 600달러)이며 예에 과월 급료으로 6만에서 24만 루블이 추횡 들었다. [171]물재병은 러시아연방국 용병법의 규칙을 피하기 공포전 어디여까지나 “보도주의적 보조을 공급한다”는 고지으로 규칙된다는 곡절의 기록를 발급받았다. 러시아연방국의 ‘반용병법’에 따르면 용병은 “러시아연방국 연방국의 이익에 반하는 고지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공정했다. [171] 신병들은 분쟁 고장에 도착한 후에야 무기를 보편화받았다.

가끔 러시아연방국군은 적십자사 견인력으로 가장하여 이동하기구 했다. [172][173][174][175]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연방국 적십자사 간판인 이고르 트루노프는 이들 호송대가 보도적 물재 공급 송달 과정을 복잡하게 만들었다며 논평했다. [176] 게다가 러시아연방국는 OSCE가 두 강경 너머로 관상 임무를 확대하는 대에도 반대했다. [177]2016년 8월 분쟁 확대[구합]2016년 8월,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은 러시아연방국의 대통령 보필공인 세르게이 글라지예프와 콘스탄틴 자툴린에 엄동설한 2014년 전어 통화 감청 곡절은 공고하며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친러 거동가에 대해 은밀한 경비 뒷바라지을 논의하고 행정청사 강점 및 기타 분쟁을 일으킨 제 걸음들을 도발시켰다고 강변했다.

[178] 2014년 2월 초 글라지예프는 우크라이나 내 제 친러 당들에게 어떻게 고장 행정청사를 점거할지, 그 후에 머을 할지, 무슨 요구를 할지에 대해 몸소적으로 명령를 내렸으며 게다가 “러시아연방국의 부하를 보내는 것을 포함해” 러시아연방국의 몸소적인 뒷바라지을 약속했다. [179][180][181]2016년 8월 8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연방국가 크리미아반섬의 경계를 따라 러시아연방국군을 가파했다고 말했다. 크리미아반섬의 강경 검문소도 같이 폐쇄되었다. [182] 8월 10일에는 러시아연방국 연방국보안국(FSB)이 “우크라이나의 테러리즘 공격”을 막았으며 크리미아반섬의 아르먄스크에서 군바리 2명이 군비 갈등로 불휘했으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연방국 거거민 수 명이 과제 견련으로 체포되었다고 발표했다.

[183][184][185] 이강 러시아연방국는 크리미아반섬의 군력을 급격하게 가파했으며 강경 근린에서 군사 교련과 병력 이동도 이어졌다. [186][187] 군로셴코는 러시아연방국가 전면 침공을 대비하고 있다고 경각했다. [188][189]2018년 케르치 해협 과제러시아연방국는 2014년부터 케르치 해협을 사실상 장악했다. 2017년에는 우크라이나가 케르치 해협 고용에 엄동설한 구해를 세계법청에 요청했다.

2018년부터는 러시아연방국가 케르치 해협에 러시아연방국 뭍와 크리미아반섬를 잇는 아이스크림 대교를 건설해 케르치 해협을 경유하는 선박 규모를 규칙하였고, 새로운 경유 규칙을 설정하고 우크라이나 선박을 자주 구속하기 개막했다. [190] 2018년 11월 25일 오데사에서 두우폴을 향해 항양하던 우크라이나 수군 선박 3척이 러시아연방국군에게 나포되었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마도로스트 25양도 구류형되었다. [191][192] 다음 경인 2018년 11월 26일 우크라이나 의회는 우크라이나 바닷가 고장 및 러시아연방국와 강경을 맞닿는 고장에 대해 계엄령을 발효하는 문제을 압도적인 표차로 경유시켰다.

[193]2019-2020년의 상황2019년 가뭄해에만 분쟁으로 우크라이나군 110명이 불휘했다. [194] 2019년 5월에는 새로 뽑힌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인 볼로디조미르 젤렌스키가 돈바스 갈등을 종식하겠다고 약속했다. [194] 2019년 12월에는 우크라이나와 친러 격리주의 세력이 군로 교환을 개막했다. 12월 29일에는 약 200명에 달하는 군로가 상호 교환되었다.

[195][196][197][198] 우크라이나 정부에 따르면 2020년에는 약 50명목 우크라이나 군바리이 불휘했다. [199] 2019년부터는 러시아연방국가 우크라이나인 약 65만명 이상에게 러시아연방국 국내여행권을 발급했다. [200][201]2021-2022년 러시아연방국군의 보강과 위기2021년 3월부터 4월까지 러시아연방국는 우크라이나와의 강경 지구에서 대로모성 군력 보강을 개막했으며, 이어 2021년 10월부터 2022년 2월까지 러시아연방국와 벨라루스에서 2차 군력 보강이 이어졌다. [202] 이 그때 러시아연방국 정부는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도모이 없다고 거듭 내실하였다.

[203][204]2021년 12월 초 미국은 러시아연방국의 내실과 달리 러시아연방국-우크라이나 강경 지구에서 러시아연방국군의 장비와 병력이 촬영된 달별 사실과 함께 러시아연방국의 침공 도모에 엄동설한 정보를 공고했다. [205] 기관은 러시아연방국군의 주 집결지 디렉터리과 침공 시 살상하거나 감옥살이할 주 됨됨이의 명단도 발표했다. [206] 미국은 러시아연방국의 침공 도모을 예측한 제 고변서도 간행했다. [206]러시아연방국의 비난과 요구침공 수 삭 다터 러시아연방국 관료들은 우크라이나가 경직 상황과 반러 가슴을 조장하고 있으며 러시아연방국어 화자를 강압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러시아연방국는 우크라이나, 북대서양규약구조, 기타 구주결합 나라들에게 제 가지 만전 견련사항을 요구했다. 2021년 12월 9일에는 푸틴이 “반러가슴이 공동체학살을 기울다 첫걸음”이라고 말하기구 했다. [207][208] 푸틴의 강변은 세계계급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209] 러시아연방국의 대량학살 강변 게다가 계기 없는 강변으로 받아들어졌다. [210][211][212]2월 21일 강연에서[213] 푸틴은 “우크라이나는 진정한 나라격를 가진 적이 없다”는 부당확한 강변을 반복하며 우크라이나의 사물 여법성에 대해 문제을 제시했다.

[214] 푸틴은 블라디미르 레닌이 러시아연방국 국토에서 말했던 곳에서 격리된 ‘소비에트 공국’을 각내 우크라이나를 만들었다고 잘못 말했으며, 이오시프 스탈린이 제2차 공간 대전광과시 이강 우크라이나의 국토를 동구주으로 개척했으며 1954년에는 니키타 흐루쇼프가 “약하하다 곡절로 크리미아반섬를 러시아연방국에서 빼앗아 우크라이나에게 줬다”라고 강변했다. [23]푸틴은 우크라이나 계급와 정부를 신나치주의(네오나치)가 지배하고 있다고 틀린 강변을 펼치면서 제2차 공간 대전광과시 그때 도이칠란트 강점 하 우크라이나의 우크라이나 부역자의 역사를 환기하며[215][216] 나치 도이칠란트의 진정한 고혈자는 유태인이 아닌 러시아연방국 그리스교인이라는 반유대주의적 음모론을 꺼내들었다. [217][209] 우크라이나는 아조프 단결나 보수파 부채꼴톱니바퀴와 같이 네오나치와 관계된 극보수파 소도모성 세력에 시달리고 있다. [218][216] 하지만 검토가들은 푸틴의 말가 굉장히 과장되었다고 지적했다.

[219][215] 유태인인 젤렌스키는 자신의 노수는 나치에 맞서 싸운 소군에 복무했으며,[220] 젤렌스키의 가족 중 3명은 홀로코스트로 불휘했다. [219]러시아연방국는 2차 군사 증원 과정에서 미국과 북대서양규약구조에게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규약구조 입단을 방예할 수 있는 법적 감옥살이력 있는 합의와 함께 북대서양규약구조의 동구주 입단국에 운둔 중인 다국적군의 권귀를 강변했다. [222] 미국과 북대서양규약구조는 이 요구를 거부했다. [223] 북대서양규약구조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규약구조 입단 급소에 대해 딱히 감도하지 않았지만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규약구조 입단을 공식으로 금기하라는 러시아연방국의 기법 규약 요구는 북대서양규약구조 규범 10조에 따른 “북대서양규약구조 개통되다 문 방책”에 배위된다는 곡절로 거부했다.

[224]전면 침공의 조짐[구합]돈바스의 전쟁는 2022년 2월 17국부터 굵다 격화되었다. [225] 우크라이나와 친러 격리주의 세력 양 측 남김없이 상호가 미리 공격을 개막했다고 비난했다. [226][227] 돈바스에서 러시아연방국군이 뒷바라지하는 군비 세력의 포격이 급격히 증가했는데 우크라이나와 결맹국은 이를 우크라이나군을 자극하거나 침공의 빌미를 만들기 각기 계획로 검토했다. [228][229][230] 2월 18일에는 도네츠크와 보로실로브그라드 인공이 수도에서 민간인에게 긴박남교부대명을 내렸으나[2기미독립운동][232][233] 세계 관상통은 만전하다 피난를 공포전서는 수 삭이 걸릴 것이라 전망했다.

[234] 러시아연방국는 공영 언론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연방국를 공격하는 겉모양을 보여주겠다며 거의 겨를 척도로 날조된 광경을 틀어주는 가식 기 공작을 거행하는 등 가식 정보 보편화도 증속했다. [235] 그때 수많은 가식 정보 광경은 소인 레벨으로 돈바스에서 가다 공격, 도발, 피난는 러시아연방국가 꾸민 일이라는 근거가 나왔다. [235][236][237]2022년 2월 21일 22시 35분(UTC+3)[238] 푸틴은 도네츠크 인공과 보로실로브그라드 인공을 공식으로 나라승낙한다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한 강연”을 발표했다. [239] 같은 날 저녁 푸틴은 돈바스에 러시아연방국군을 배공치사도록 명령했으며 이는 “안온끊임없이 임무”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240][241] 2월 22일에는 연방국평의회가 만장일치로 푸틴에게 러시아연방국 외부에도 군력을 고용할 수 있는 권한을 교부했다. [242] 이에 대거리해 젤렌스키는 대비대 징모을 명했다. [243] 다음 날에는 우크라이나 의회가 30일 전국에 무상사태를 공고하고 전 대비대 구사을 명했다. [244][245][246] 러시아연방국는 키이우에 있는 대사관을 권귀하기 개막했다.

[247]2월 23일 밤에는[248] 젤렌스키가 러시아연방국어 강연을 통해 러시아연방국 거거민들에게 갈등을 막아달라고 사정했다. [249][250] 젤렌스키는 러시아연방국가 강변하는 신나치주의라는 강변을 내실하고 돈바스를 공격할 의사도 없다고 말했다. [251] 2월 23일에는 크렘린궁전 대변자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도네츠크와 보로실로브그라드의 격리주의 세력 리더들이 푸틴에게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으로 민간인 역사상자가 발생했으며 군사적 뒷바라지을 사정하는 간찰를 보냈다고 밝혔다. [252]2022년 러시아연방국의 전면 침공2022년 2월 24일,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비군비화하고 탈나치화하기 각기 “각별 군사 공작의 거행에 대하여”를 발표하며[253][254] 2022년 러시아연방국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개막되었다.

[255] 수 분 후 키이우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유도미사일 돌격이 개막되었고 뒤이어 제 전선에서 대로모성 지상 공격이 이어졌다. [256][257] 젤렌스키는 18세에서 60세 사이 전 우크라이나 남성 거거민에 대해 총구사령을 발표하고 계엄령을 내려 국외 출국을 금기했다. [258][259]처음 러시아연방국군의 공격은 벨라루스에서 키이우 방향을 기울다 북부 전역, 하르키우 방향을 기울다 북동부 전역, 크리미아반섬에서 올라오는 남부 전역,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서 전행하는 동부 전역으로 구성되었다. [260][261] 북부 전선에서는 키이우를 둘러싸고 우크라이나군이 강하다 거역을 펼쳐 러시아연방국군이 큰 낙본을 입어 3월 공격이 분리되었고 4월에는 낙후했다.

4월 8일 러시아연방국군은 알렉산드르 드보르니코프 대수장군 지기하에 남부와 동부 우크라이나로 재배치되었으며 북부에서 권귀한 국부 부대는 돈바스 고장에 재투입되었다. [262] 4월 19일에는 러시아연방국가 하르키우에서 루한스크, 도네츠크까지 이르는 500 km 동안의 전선에서 새 공세를 개막했다. [263] 5월 13일에는 하르키우 근린에서 우크라이나군의 반공으로 러시아연방국군이 낙후했다. 5월 20일에는 길었던 아조우스탈 제철소의 옹위전 끝에 두우폴이 공락되었다.

[264][265] 러시아연방국군은 선두에서 멀찌가니 끝나다 군사 골물과 민간 골물을 끊임없이 포격했다. [266][267] 우크라이나군은 8월에는 남부에서, 9월에는 동부에서 역격을 실시했다. 9월 30일에는 러시아연방국가 침공 기간 갈래 강점한 도네츠크주, 헤르손주, 루한스크주, 자포리자주 4개주를 병탄했다. [268] 러시아연방국의 4개주 병탄은 공간 각방에서 인정받지 못했고 큰 논평을 받았다.

[269] 동류 9월 21일 푸틴이 군사 교련을 받은 30만명목 민간인과 징모 과녁으로 갈래된 2,500만명목 러시아연방국 민간인을 징모하겠다는 구사령을 발표불량 러시아연방국를 떠나는 편도 비행기표들이 매진되기구 했다. [270][271]러시아연방국의 침공은 세계적으로 침격 갈등으로 비난받았다. [272][273] 유엔 총회의에서 러시아연방국군의 전면 권귀를 요구하는 각오안을 경유했으며 세계사법논죄소는 러시아연방국의 군사 공작을 분리하라고 명했고 구주 평의회는 러시아연방국의 성원국 자격을 정명령켰다. 수많은 나라들이 러시아연방국에게 제 검약 제재를 가했으며[274] 우크라이나에게 보도적, 군사적 뒷바라지을 공급했다.

[275]인권 유린 과제[구합] 돈바스 갈등 기성관 인권 상황 및 러시아연방국의 갈등 범죄 § 우크라이나 기록를 참고하십시오. 러시아연방국-우크라이나 갈등은 제 인권 유린를 대동했다. 2014년부터 2021년까지 3공포 이논의 민간인 역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이들 대갈래은 2014년에서 2015년 사이에 발생했다. [276] 분쟁 지구에 사는 거민의 이동권도 규칙되었다.

[277] 분쟁 전기 다년간격은 양 측이 자의적인 구류이 발생했다. 2016년 이강 우크라이나 정부 장악 고장에서는 이 행위가 줄어든 반면 격리주의 세력이 장악한 고장은 여전히 끊임없이되었다. [278] 양 측이 금지른 고문 등 학대에 엄동설한 검사는 거의 진전되지 않았다. [279][280] 유엔 인권 고등판무관 사무소(OHCHR)에 따르면 3개의 TV 경로이 강구로 폐쇄되는 묘사의 무궁자재 유린 행위도 발생했다고 고변했다.

[279] OHCHR은 분쟁 견련 성폭력 과제도 고변받았으나 “성폭력이 우크라이나 동부 고장의 정부군이나 군비동아리가 전략적 혹은 방법적 고지을 공포전 고용했다는” 믿을만한 계기어가다 없다고 밝혔다. [281] OHCHR은 2014년부터 2021년까지 약 4공포목 구류자들이 고문과 학대를 당했으며 이 중 약 1,500명이 정부군에게, 2,500명이 격리주의 군비 동아리에게 당한 것이며 성폭력 피해자도 340명이 발생했다고 고변했다. [282]견련 과제[구합]가스 분쟁2014년까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연방국의 천연 가스를 구주에 매출하는데 거쳐가는 주 반송로였으며 가스 수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는 연중 약 30억 달러의 통행전를 받아 우크라이나 내에서 소득성이 제일 높은 수출공업에 등극했다. [283] 하지만 러시아연방국가 우크라이나를 곡행하는 노드스트림 파이프라인을 움직임하고 우크라이나를 지나는 가스 수운량도 꾸준히 줄였다.

[283] 2014년 2월 러시아연방국-우크라이나 갈등이 돌발불량 가스 경지으로도 깊다 경직 공기가 확대되었다. [284][285] 이강 돈바스 갈등이 돌발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연방국산 가스 도입 의지도를 줄이기 공포전 도모했던 끊임없이우스카 가스전의 우크라이나 자체 셰일가스 매장지 개척 경영이 분리되었다. [286] 결국 EU 근력 담당 서기공인 귄터 외팅거가 우크라이나에 엄동설한 공급망과 EU를 기울다 교제 거간를 공포전 발견되었다. [287]2014년 5월에는 이바노프란키우스크주의 우렌호이-포두-우주호로드 가스관이 도발로 고장되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연방국 테러리즘리스트가 금지른 일이라고 비난했다. [288] 2014년 6월 17일에는 러시아연방국가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가스를 가금 미지급을 곡절로 규칙한지 날도 되지 않아 폴타바주에서 가스관이 도발했다. 우크라이나의 내무부 장공인 아르센 아바코울리다 다음날 가스관 도발은 폭탄이 터져 발생했다고 밝혔다. [289]러시아연방국는 2018년 이강 우크라이나를 거쳐 구주으로 가는 가스 공급을 완전히 포기할 도모이었다.

[290][291] 러시아연방국의 공영 근력 기업가 가스테이플사롬은 이미 우크라이나를 거쳐 가는 가스 공급량을 대폭 줄였고, 터키스트림이나 노드스트림같은 다종다양화한 가스관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거쳐 가는 가스 수운량을 더 줄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292] 가스테이플사롬과 우크라이나는 2019년 러시아연방국산 가스 수운에 엄동설한 5년짜리 계약에 합의했다. [293][294]2020년에는 러시아연방국에서 터키로 이어지는 터키스트림 천연가스관이 남동구주 고장의 가스 공급 이동을 우크라이나 횡절 가스관과 트란스발칸 가스관으로 향하는 수운을 곡행하여 바꿔놓았다. [295][296]2021년 5월 조 바이든 정부는 러시아연방국에서 도이칠란트로 향하는 노드스트림 2 가스관의 배후 회사에 대해 카드의 미국 적강대국에 엄동설한 제재대책법(CAATSA) 제재를 포기했다.

[297][298]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조 바이든의 걸음에 ‘놀랍다’며 ‘실망스럽다’고 의견을 표했다. [299] 2021년 7월에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게 도이칠란트과의 파이프라인 협정 예고에 대해 논평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300][301]2021년 7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촉각세포 도이칠란트 총리는 러시아연방국가 ‘노드스트림’을 “경국적 무기”로 고용할 과우 미국이 제재를 개막할 수 있다는데 합의했다.

이 협정은 폴란드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연방국의 가스 공급망에서 완전히 분리되는 일을 막기 공포전 생겨났다. 우크라이나는 2024년 말까지 5아주 달러 비등의 끊임없이 가하다 근력 견련 대부을 받으며, 도이칠란트은 우크라이나의 가스 반송료 낙본을 대상하고 우크라이나를 녹물 근력로 교체하기 공포전 10억 달러 도모성의 기본금을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동류 러시아연방국 정가첨 동의할 과우 우크라이나를 통한 러시아연방국산 가스 수운 계약이 2034년까지 갱신된다. [302][303][304]2021년 8월 젤렌스키는 러시아연방국와 도이칠란트 사이의 노드스트림 2 천연 가스관이 “우크라이나 뿐 아니라 구주 남김없이에 공포전한 무기”라고 경각했다.

[305][306] 2021년 9월에는 우크라이나의 나프토하즈 CEO인 초자 비트렌코는 러시아연방국가 천연 가스를 “결정학적 무기”로 고용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307] 비트렌코는 “미국과 도이칠란트의 공유 공표에서는 크렘린궁전이 가스를 무기로 고용한다각 마땅하다 대거리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등는 목하 노드스트림 2의 경영사인 가스테이플사롬의 100% 자회사에 엄동설한 제재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308]하이브리드 갈등[구합] 하이브리드 갈등 기록를 참고하십시오.

러시아연방국-우크라이나 갈등은 비전통적인 길을 이용한 하이브리드 갈등의 요소도 포함하고 있다, 러시아연방국는 2015년 12월과 2016년에 공간 처녀로 성공한 경주망을 기울다 사이버 공격인 우크라이나의 경주망을 해킹하였고[309] 2017년 6월에는 미국이 그때 나다 사이버 공격 중 제일 큰 도모성라고 밝힌 대로모성 공급망을 기울다 사이버 공격도 있었다. [기미독립운동0] 이에 대거리해 우크라이나도 2016년 10월에 러시아연방국가 우크라이나의 크리미아반섬를 강점하고 돈바스의 격리주의 난동사태를 부추기어가다 도모과 견련된 2,337건의 메일을 공고한 수르코프 누출 과제을 지휘했다. [기미독립운동1] 우크라이나를 향해 러시아연방국가 펼치는 정보전 게다가 하이브리드 갈등의 또 딴 전선에 해당한다.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연방국의 ‘제5열’로는 대개 고장당, 우크라이나 공산당, 우크라이나 진보계급당, 러시아연방국 그리스교 등의 친러 세력이 언급된다.

[기미독립운동2][기미독립운동3][기미독립운동4]러시아연방국의 프로파간다와 가식사실 보편화[구합]갈등 중 공중의 노발대발를 불러일으키기 공포전 가식 정보가 자주 고용되었다. 2014년 4월, 러시아연방국의 뉴스거리 경로인 러시아연방국 1과 NTV에서는 한 경로에서는 한 남성이 파시스트적인 우크라이나 깡패의 공격을 받았다는 보도를 내보냈는데, 딴 경로에서는 똑같은 남성이 보수파 반러 급동주의 민병개요 교련에 경비을 뒷바라지하고 있다는 기별을 보도하고 있었다. [기미독립운동6][기미독립운동7] 또 딴 경로에서는 그 남성을 ‘신나치주의’를 믿는 사람으로 보도하는 등 상호 배리된 소먹이 동기에 방송되었다. [기미독립운동8] 2014년 5월에는 러시아연방국 1에서 우크라이나의 만행에 엄동설한 담화를 방송하는데 2012년 카슈가르 연방국관널보자기 공작 광경을 보여주었다.

[기미독립운동9] 같은 달 러시아연방국의 뉴스거리 기별사인 Life. ru는 도네츠크 세계비행장을 수복했을 그때 우크라이나군이 죽인 고혈자 사실을 2013년 시리아아랍공화국 내전에서 부비등한 소년 사실을 보여주었다. [320]2014년 6월에는 몇 러시아연방국 공영 언론이 우크라이나군이 인탄을 고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그 근거로 2004년 이라크에서 미군이 인탄을 고용하는 광경을 내세웠다. [기미독립운동9] 2014년 7월에는 페르비 카날이 러시아연방국어를 하는 3세 소년이 우크라이나 겨레주의자에게 십자가형을 당해 살상당했단 걸 목견했다는 부녀의 면담를 보도했는데, 그때 못박혔다고 입증한 슬로비얀스크의 가구이 사실 사물하지 않는 가구이었고, 과제 자체도 사물하지 않았던 가식으로 밝혀졌다.

[321][322][기미독립운동7][기미독립운동9]2022년 러시아연방국 공영 언론은 우크라이나 동부 고장에서 러시아연방국인이 대량 학살되었으며 공동체 고분이 발견되었다고 보도했다. 루한스크 나성의 한 고분의 과우 2014년 격렬한 전쟁가 벌어져 고장 영안실의 전기가 끊어지자 파해쳐졌다. 세계엠네스티는 2014년 수백 널보자기 사체로 가득히 찬 공동체고분에 엄동설한 러시아연방국의 강변을 검사했고, 결말 러시아연방국와 우크라이나 양측에서 법을 준수하지 않은 초법적인 제 처형 경우를 발견했다. [323][324][325]러시아연방국의 검열 구조인 로스트콤나조르는 러시아연방국 정부에서 나온 발표만을 언론이 보도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과우 벌금형 또는 언론 차단을 거행할 수 있고[327] 러시아연방국 내 전 언론과 학교에 이 갈등을 “각별 군사 공작”으로만 말하도록 명령했다.

[328] 2022년 3월 4일에는 푸틴이 러시아연방국군과 그 공작에 엄동설한 “가식 뉴스거리”를 보편화하는 사람에게는 으뜸 15년형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는 규범에 사인했으며[329] 이강 국부 언론이 우크라이나에 엄동설한 보도를 분리하였다. [330] 러시아연방국의 야 경국인인 알렉세이 나발니는 (러시아연방국 내에서) 러시아연방국 공영 언론이 “가짓불의 괴짜”이라는 건 가상하다 수 없으며, “불행히도 강령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설복력도 높다”라고 말했다. [3기미독립운동] 나발니는 트위터에서 러시아연방국 공영 언론인과 같은 ‘갈등 본사자'(warmongers)들은 “반드시 전범으로 간주해야 하며, 구합장부터 뉴스거리쇼 가기자, 뉴스거리 엮은이까지 다 [이들은] 언젠가 제재를 받고 논죄을 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332]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인 젤렌스키는 유태인임에도 불구하고, 푸틴과 러시아연방국 언론들은 우크라이나 정부를 고변 러시아연방국의 그늘를 난동로 하는 러시아연방국 겨레을 구박하는 신나치주의자들이 모여 있다고 비난했다.

[333][334][324] 언론인 나탈리아 안토노바는 “목하 러시아연방국의 침격갈등은 광고을 통해 꼭 제2차 공간 대전광과시 계제 나치 도이칠란트을 막기 공포전 가다 수백만 명목 러시아연방국 군바리의 유산을 잇는 것처럼 변모하였다”라고 말했다. [335]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연방국가 발안한 나치즘 미화 퇴치와 견련한 유엔 총회의 각오안 A/C. 3/76/L. 57/Rev.

1 구용을 거부하며 나치즘, 신나치주의, 기타 인종 차별과 인종주의, 외객 혐오와 견련된 무관용의 근대적 묘사 구성에 대해 반대하는 안을 반대했다는 우크라이나를 친나치적 나라라고 러시아연방국가 강변하였다. 실제로 각오안 구용을 거부한 또 딴 나라는 미국으로 러시아연방국가 이와 함께 광고의 계기를 잡아두고 있다. [336][337] 유엔 검약 계급 이계급(경제사회이사회) 미국 부간판는 러시아연방국가 발안한 각오안에 대해 “근처국을 폄하하는 러시아연방국의 가식 정보 광고전을 여법화하러는 얄팍한 계획이며 나치 미화를 종식불량는 냉소적인 제일을 고용해 근대 구주 역사를 왜곡된 소 규격 담화로 광고하러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338]러시아연방국-북대서양규약구조 관계[구합] 러시아연방국-북대서양규약구조 관계 기록를 참고하십시오.

발트해와 블랙시 고공을 비행하는 러시아연방국군의 군용비행기어가다 가끔 곳를 숨기거나 항공관제사와 연락하지 않아 민항기에게 잠재적인 갈등 공포전이 사물한다. 북대서양규약구조 항공기어가다 2022년 4월 말 북대서양규약구조 결맹국 영공 근린에서 비행하는 러시아연방국군 군용비행기를 추적하고 영격할 고지으로 제 계단 스크렘블을 했다. 다만 러시아연방국 항공기가 북대서양규약구조 결맹국 영공에 돌입한 적은 없었으며 만전하며 표준적인 방법으로 영격이 이뤄졌다. [339] 러시아연방국의 외무부 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는 이 갈등을 북대서양규약구조가 광고한 대리전이라고 강변하며[340] “아등는 북대서양규약구조와 갈등하고 있다고 생각강구 않지만.

불행히도 북대서양규약구조는 러시아연방국와 갈등 가운데귀라고 믿고 있다”라고 말했다. [341] 그때 영국의 총리 보리스 존슨은 북대서양규약구조가 우크라이나에서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는 라브로프의 강변을 내실했다.

[342] 전 미국 가운데정보국(미국중앙정보국) 국장인 리언 패네타는 ABC 방송과의 면담에서 미국은 러시아연방국와의 대리전에 ‘의자문 여지 없이’ 간여 가운데귀라고 밝혔다. [343]https://ko. wikipedia. org/wiki/%EB%9F%AC%EC%8B%9C%EC%95%84-%EC%9A%B0%ED%81%AC%EB%9D%BC%EC%9D%B4%EB%82%98_%EC%A0%84%EC%9F%81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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